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의 첫 반려견과의 이별

꼬리 달린 가족/또봉이네 일상

by tobong 2019. 6. 23. 11:43

본문

반응형


내 인생 첫 반려견인 또리를 키우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강아지 열마리도 키울 수 있을거같은데, 왜 사람들은 강아지 키우는게 힘들다고하지?'

하지만 둘째 봉봉이를 입양후 나는 알게되었다.
내 인생 첫 반려견인 또리가 정말 착한 아이라는 사실을.

커뮤니티에서 종종 견주들이 했던말중 반려견을 키울때 바닥에 모든것을 치우라고 한다.
두루마리 휴지를 바닥에 놓고 출근해도 퇴근후 그대로인집.. 또리는 특이할 정도로 착했던 아이였던것이다.

심지어 결혼전 자취를하며 작은 원룸에서 또리를 키웠고, 나는 회사일로  늦은밤이나 새벽에 집에 오는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흔한 하울링 한번 하지않고 그렇게 묵묵히 문앞에서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려주던 아이었다.

공을 가져와 놀아달라는 아이에게 '밤에 시끄럽게하는거 아니야'하며 수면을 독촉했다.
뛰어놀 공간도 없는 5평 남짓한 원룸에서 종일 잠들고 깨고를 반복하며 문앞에서 긴긴시간 주인을 기다렸는데.. 오자마자 또 자라니!

프로젝트성으로 진행되는 내 업무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일의 특성상 예견치 못한 변수들과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인해 야근이 빈번하며 불가피하게 밤새 일할때도 있었다.

그당시 깐깐한 클라이언트의 요구로 한달정도 퇴근이 늦었는데 어느날 또리의 이상 행동을 발견했다.
내가 출근후 한평정도 되는 공간의 벽지를 손톱으로 긁어 찢어놓은것이다.
처음엔 화가났지만 이윽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생각해보니 또리는 내가 늦는날 아침에 저녁까지 먹을 사료를 주고 나갔지만, 먹지않고 내가 집에오면 그때서야 허겁지겁 사료를 흡입했다.

이렇게 반려견을 외롭게 방치한 나쁜 주인을 또리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퇴근후 힘들다고 침대에 누워도 놀아달라 보채지않고 위로하듯 옆에 누워 나늘 바라보고있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또리의 사랑은 사람처럼 득실을 따지지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무식한 나쁜 견주였다.


반려견 또리
착한 나의 반려견 또리


그 뒤로 퇴근시간이 늦더라도 단 5분이라도 또리와 놀다 수면을 취했고, 주말에는 꼭 필요한 행사에만 참석하고 또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함께하는 시간이 축적되니 또리의 사소한 습관과 표정을 통해 기분을 예측할수 있었다.
반려견은 사람과 언어로 대화하지 못하지만, 확실하게 온몸으로 자기의 기분을 드러내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보다 행복했고 친해졌다.


착한 나의 반려견 또리


2014년 나는 이사를 했고, 결혼도 했다.

사실 남편이 또리의 첫 주인인데 사정이 생겨 그당시 여자친구인 내게 맡긴 것 이었다.

또리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첫 주인인 남편과 두번째 주인인 나와 함께살게 되었고, 집도 넓어졌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출근한 시간에 친구가 되어줄 둘째 봉봉이를 입양했다.

봉봉이는 같은 말티즈였지만 또리와 성격이 많이 달랐다.
온집안을 어질러놓고 물어뜯고, 또리를 때리고 물기도하였다.
머리가 좋아 내가 리빙박스에 옷을 넣는것을 유심히 지겨보더니 다음날 남편과 내가 출근하자 입으로 리빙박스 지퍼를 열어 옷을 전부 찢어놓기도했다.

그래도 노견으로 접어든 또리가 봉봉이덕에 움직임이 많아졌고, 놀자며 장난을 걸기도 하는 모습에 둘째를 입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리와 봉봉이 산책길 / 오른쪽 행복한 또리 모습



그렇게 약 4년을 우리는 가족으로 행복하게 살던중, 2019년 3월에 또리가 혈뇨를 보아 병원에 데려갔다.

종합검사를 진행했는데 특이사항 없이 정상 수치였고, 방광 초음파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으나 빈뇨나 혈뇨등 방광염 증상이 있어 주사를 맞고 약을 일주일치 처방받았다.
하지만 혈뇨는 일주일후에도 지속되었고, 다시 내원하였더니 질염일수도 있다하여 스테로이드를 추가로 처방받아왔다.
스테로이드를 먹이니 혈뇨가 멈췄지만 약이 떨어지자 다시 혈뇨를 보았다.

다시 병원에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소변검사를 했지만 혈뇨농도는 여전히 옅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검사결과가 정상이었고, 소변을 자주보고 물을 많이 마시고 혈뇨를 보는것외에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잘뛰어놀고 식욕도 왕성하여 오히려 둘째밥까지 뺏어먹었다.
그리하여 병원에서는 약을 복용하며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며칠 후, 우연히 뒷다리가 거뭇해보여 털을 들추어 보았더니 검은 혹 같은것이 한쪽 다리에 분포되어있었다.
약을 다 먹지 않았지만 내원하여 다리를 보여주었더니 수의사 표정이 어두워졌고 큰병원으로 안내했다.
그날은 시간이늦어 진료가 어렵다하여 다음날 아침에 방문하기로하고 집으로왔다.

다음날 평상시처럼 출근 준비를하고 아이들 밥을 챙겨주었는데 밥달라며 매일 따라다니던 또리가 안방에서 나오지않았다.
제일 좋아하던 간식을 입에 대주어도 먹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일이 있어 출근을했고, 남편이 또리를 데리고 큰병원에 갔다.
출근 후 두시간정도 흘렀을때 남편에게 전화가왔다.
검사결과 모든 장기에 암이 전이된 상태라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며칠 못 살거라했단다.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않았다. 

내원하던 병원에서 한달전 검사결과를 큰병원에 전달했고, 한달내에 이렇게 나빠진것으로 보아 희귀 혈액암일거라 했다.
남편은 믿을수 없어 조직검사를 의뢰했지만,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정도 걸리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없을거라며 병원에선 조직검사 대신 안락사를 권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하기 싫었고,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락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심장에 종양이 뒤덮여 숨쉬기 힘들거라는 말에 급히 반차를 내고 산소방을 렌탈했다.


또리는 더위를 많이타서 날씨가 더워지면 항상 헥헥거렸고 식욕이 없었다. 그럴땐 며칠 황태국을 먹으면 살아나곤했다.
평소 자주 웃는 아이라 입을 벌리고 헥헥거리기도 했다.
종양으로 인해 숨쉬기 힘들어 헥헥거리던것을 우리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고, 아파서.. 숨을쉬기 힘들어서 헥헥거린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부터 또리는 많이 힘들어보였다.
특히 숨쉬기를 너무 힘들어하여 거의 하루종일 산소방에서 지냈다.
탄수화물을 먹이면 암이 더 빨리 진행된다는 수의사의 말에, 단백질 위주의 자연식을 만들어주고 진통제를 먹였다.

회사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6시가되면 가방을 들고 미친듯이 뛰어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고, 혹시나 현관문을 열었는데 또리가 이미 하늘나라로 갔을까봐 무서웠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고, 또리의 식욕도 점점 떨어져갔다. 이제 좋아하던 간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하루 힘들어하는 또리를 보며 우리부부는 주말에 시부모님께 인사드린후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안락사 결정을 하기까지 남편도 나도 많이 울었다.

3일째 되던날 역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퇴근했는데 또리가 폴짝폴짝 뛰며 간식을 달라고 했다.
너무 기뻐서 남편에게 전화하여 또리가 회복이 되고 있는건지 컨디션이 너무 좋다고 했다.

병원에서 진통제를 딱 3일치만 처방해주어서 마지막 진통제를 먹인후 얼른 병원으로 뛰어가 3일치 진통제를 더 처방받아왔다.
오는길에 기쁜마음으로 연어와 기타 자연식을 만들 재료를 사왔다.
그리고 집에와서 강아지의 암이 치유되거나 연명한 사례가 있는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검색하다보니 어떤분의 반려견이 암선고후 8개월째 생을 이어가고있는 이야기를 올려놓은것이 눈에 들어왔고
어떤 민간요법이 종양의 크기를 줄이는데 효과를 보았다하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일 당장 재료를 사러가야겠다고 위치를 메모해놓았다.

그리고 밤12시30분..
산소방안에서 잠을 자던 또리가 갑자기 일어나 숨을 거칠게 쉬며 청색증을 보였다.
나는 남편을 깨웠고, 또리는 앉아서 거친숨을 쉬며 계속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더 숨이 거칠어졌고 우리부부는 또리가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후, 또리는 여전히 거친숨을 쉬며 남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산소방에 머리를 쿵 박으며 쓰러졌다.
남편은 차마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울며 아이의 몸을 어루만져주었다.
또리는 쓰러진채로 수회 경기를 일으키는듯 보이더니 이내 심장이 멎었다.
몸은 아직 따뜻했고, 몇분정도 지나자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둘째 봉봉이의 충격이 걱정되어, 우리는 또리의 죽음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장례식장에 전화를 했고, 박스에 푹신한 이불을 깔아주고 아이를 눕혔다.
차안에서 또리를 안고가는 내내 아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고 눈물만 나왔다.

그렇게 또리는 13살에 별이 되어 우리곁을 떠났다.

2019년 5월 17일 새벽 또리 장례



새벽3시부터 장례가 진행되었고, 장례를 마치고 유골함을 가지고 집으로와서 바로 출근을 해야했다.
눈을 붙이지 못해 머리는 멍했으나, 또리가 쓰러지던 그 순간은 머릿속에서 생생히 반복되었다.
도저히 업무에 집중할 수 없어 연차를 내고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면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줄것 같던 또리가 없었다.
한동안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시니어로 접어들었을때 병에 걸리면 남은생동안 먹고싶은것 다 먹이고 가게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3일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억울했다.

희귀암으로 추정되어 초기에 발견했어도 치료는 어려웠을거라 했다.

우리 아이는 살아생전 효녀였는데, 죽을때도 주인이 힘들까봐 밝게 꾹꾹 참고 지내다가 정확히 3일만 아픈 모습을 보이고 떠났다.


또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5주가 흘렀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또리를 본다.
그리고 아이가 자주 있던 자리를 보면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혹시나 같은 증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 글을 보는 견주가 있다면..
안일하게 지켜보지 말고, 조금이라도 빠른시일내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길 바래본다.
완쾌가 어렵더라도 남은시간 아이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도록 덜 아프고, 덜 힘들게 도와줄 수 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보호자다.
보호자로서의 '촉'은 아무리 훌륭한 수의자도 가질 수 없는 능력이며, 어떤 장비나 혈액 검사와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지표다.
어제에 비해 우리 아이가 조금 이상하지는 않은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특히나 우리 또리처럼 정신력과 참을성이 강한 강아지는 더 면밀히 관찰해야한다.


우리 또리, 이제 안 아프지? 그동안 참느라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곳에선 아프지말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잘 놀고있어~ 
나중에 엄마가 가면 꼭 예쁜 모습으로 꼬리흔들며 마중나와 줄꺼지?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